[시론]
여당이 인구 감소와 고령화에 대응한다는 명분으로 ‘단계별 정년연장’ 검토에 착수했다. 하지만 노동계는 즉각 “국민연금 수급 연령과의 미스매치로 인한 소득 공백을 방치한다”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겉보기에는 정년과 연금 수령 나이의 관계 재조정이라는 복지제도적 갈등처럼 보이지만, 이 논쟁의 본질은 훨씬 더 깊은 곳에 있다. 현재 정치권이 추진하는 방식의 점진적·인위적 정년연장 시도는 바람직하지 못하며, 지속 불가능하다. 우리는 표를 의식한 정쟁의 틀에서 벗어나, 국가 전체의 지속가능성과 기업 경영의 원칙, 그리고 세대 간 사회정의라는 거시적 관점에서 완전히 새로운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1. 인재 육성의 단절과 청년 고용 축소: 경영학적 관점의 위험성
현재 제기되는 단계별 정년연장의 가장 큰 맹점은 조직의 ‘인적 자원 순환’을 마비시킨다는 데 있다. 경영학적 관점에서 기업의 지속가능성은 끊임없는 혁신과 차세대 인재 육성에 기반한다. 장년층의 퇴직이 인위적으로 유예되면 기업은 고정비 부담으로 인해 신규 채용을 줄일 수밖에 없다. 이는 단순히 청년 실업률의 수치적 증가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조직 내부적으로는 기술과 노하우를 전수받고 기업을 이끌어가야 할 ‘허리 계층’이자 미래 동력인 청년·장년 초년생 인재 육성이 중단되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자원은 언제나 한정되어 있다는 경제학적 전제에서 출발해야 한다. 한정된 기업의 재원 안에서 장년층의 고용 기간만 늘리는 것은, 미래 세대의 일자리 확보 기회를 원천 차단하는 결과를 낳는다. 청년층을 배려하고 이들에게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기성세대가 마땅히 가져야 할 책임이자 덕목이다. 미래 세대의 가능성을 밟고 서서 유지되는 정년연장은 국가 경쟁력을 갉아먹는 자해 행위와 다름없다.
2. 기업에 대한 역차별과 공동체적 정의의 붕괴
일각에서는 정년연장의 필요성을 ‘노년층의 수입과 일자리 보장’이라는 시각에서 접근한다. 그러나 이는 번지수가 잘못된 접근이다. 현재 법정 정년을 맞이하는 장년층 세대는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안정적인 사회보장제도인 ‘국민연금’의 수혜를 온전히 누릴 수 있는 계층이다. 국가의 주된 복지 시스템이 이들의 노후를 뒷받침하는 기반이 되어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령층의 추가적인 수입 보장 책임을 고스란히 민간 기업과 다음 세대에 전가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사회는 서로 지지하고 양보하는 ‘공동체’이다. 본인들의 기득권과 이익만을 강조하며 양보를 거부하는 정년층의 부담을 기업이 무조건 떠안도록 강제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다. 대한민국 헌법 제11조는 평등의 원칙을 규정하고 있으며, 근로기준법 역시 근로조건의 대등결정 원칙(제4조)을 명시하고 있다. 사적 자치의 영역인 기업 경영에 국가가 인위적인 고용 연장을 강제하는 것은 기업에 대한 ‘역차별’이다. 기업이 생존해야 고용도 존재할 수 있다는 시장의 대원칙을 무시한 채, 기업을 사회복지 기관 취급하는 정책은 지양되어야 한다.
3. 대안으로서의 ‘정년 유지 후 임금 조정을 통한 재고용’
따라서 법정 정년 자체를 점진적으로 늘리는 미봉책 대신, 명확한 원칙에 기반한 대안을 도입해야 한다. 바로 ‘법정 정년은 그대로 유지하되, 직무 중심의 임금 조정을 조건으로 한 재고용(계약직 전환 등)’ 모델이다.
근로기준법 제23조는 정당한 이유 없는 해고를 금지하고 있지만, 정년 도달로 인한 근로관계 종료는 당연 퇴직 사유로 인정된다. 고로 정년이라는 법적 기준선은 명확히 지키되, 이후의 근로 플랜은 기업과 노동자의 자율적 선택에 맡겨야 한다. 생산성에 맞추어 임금을 조정하고 재고용 계약을 맺는 방식을 전면 적용하되,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정년층 노동자에게는 퇴직이라는 길을 선택하게 하는 것이 노동법적·경영학적 원칙에 부합한다.
여기서 과거 대안으로 거론되던 ‘임금피크제’를 떠올릴 수 있으나, 임금피크제는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다. 대법원 판례(2020다244111 등)에서도 알 수 있듯, 합리적 이유 없는 임금피크제는 고령자고용법 위반(연령차별 금지)으로 무효가 될 소지가 크며, 모든 기업이 일률적으로 임금피크제를 허용하거나 도입할 리도 만무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만 벌릴 뿐이다. 따라서 모호한 피크제 대신, 정년 퇴직 후 ‘새로운 근로계약 체결을 통한 시장가 기반의 재고용’이라는 선명한 원칙을 세우고 단호하게 추진해야 한다.
4. 정쟁을 넘어 자유·평등·정의의 원칙으로
대한민국 헌법 제32조는 모든 국민의 근로의 권리를 보장하지만, 동시에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적정임금의 보장에 힘써야 한다고 규정한다. 여기서 말하는 권리는 타인의 기회를 박탈하면서까지 내 권리만을 무한정 확장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누구나 근로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가 있지만, 그것은 '한정된 자원의 공정한 분배'와 '세대 간 평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실현 가능할 때 비로소 정의로워진다.
정치인들은 표 계산에 몰두해 이 중차대한 국가적 과제를 정쟁의 대상으로 끌고 와서는 안 된다. 법정 정년연장은 당장 눈앞의 고령층 표심을 잡기에는 좋을지 몰라도, 청년들의 절망을 깊게 하고 기업의 활력을 죽여 결국 국가의 미래 동력을 끄는 선택이다.
이제 우리는 감상주의적 복지론에서 벗어나 냉철해져야 한다. 장년층의 안정된 노후(사회보장), 청년의 일자리 기회(세대 정의), 기업의 지속가능성(경영 원칙)이 황금비율을 이룰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다. 정년 연장이라는 손쉬운 정치적 수사를 버리고, '정년 유지 후 시장 친화적 재고용'이라는 원칙과 정의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전면 재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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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K26년 6월 16일 (수) SOO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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